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리히 폰 뎀 바흐-첼레프스키 (문단 편집) == 기타 == * [[헤르만 괴링]]이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기 전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을 했는데 자신이 그 자살을 도왔다고 주장했으나 현재는 부정되고 있다. 교도소 간부의 도움을 받아 자살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애초에 법정에서 강도 높은 욕설을 퍼부을 정도로 혐오하던 인물인데 그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 [[1922년]]에 결혼하여 2명의 딸과 3명의 아들을 낳았다. * 정신병을 앓고 있었고 여러 차례 진료받은 기록이 남아 있다. 1942년경 한창 파르티잔 탄압에 열을 올리던 때에 발작(seizure), 환각(delusions, hallucinations) 증세를 보였다고 하는데 무장친위대 위생총감 [[에른스트 로베르트 그라비츠]]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밤마다 소리를 질러대고, 환각에 시달렸는데" [[https://books.google.co.kr/books?id=LGUY_C3UJCYC&pg=PT127&lpg=PT127&dq=erich+von+dem+bach+zelewski&source=bl&ots=cguKdStY5Q&sig=RwutPPPv0lFOI62J2JIIIF1D9zE&hl=ko&sa=X&ved=0ahUKEwjs7OLXro7OAhVKJJQKHVORCwU4KBDoAQgoMAI#v=onepage&q=erich%20von%20dem%20bach%20zelewski&f=false|자신들이 죽이라고 한 유대인의 환영을 많이 보면서 괴로워했다고 한다.]] 일기에 적은 내용에 따르면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부상당한 것도 트라우마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 때문에 동부전선에서 활동하다가도 독일 본토로 돌아와 치료받고 다시 전선으로 복귀하는 생활이 이어졌다고 하는데 증상만 보면 일종의 [[PTSD]]라고 여겨진다. 물론 그런 정신 질환을 앓으면서도 무자비한 학살을 그만두지 않고, 오히려 2년 뒤 바르샤바에서 역대급 학살을 저질렀다. 정신병 증세는 전후까지도 이어져서 최후를 맞은 장소도 뮌헨의 정신병원이었다. * 정신병뿐만 아니라 내장 질환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무장친위대 부대는 식수 보급을 소홀히 한 탓에 작전 시작 후 얼마 안 가 식수가 부족하게 되었고, 증류, 정수 장치도 제대로 구비해 놓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위생적으로 좋지 않은 습지의 물을 마셔야 했고, 장성급도 예외는 아니어서 바흐첼레프스키도 이런 오수를 마셔야 했다. 결국 내장에 이상이 생겨 고통을 호소하게 되고 진통제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는데 특히 그 중에서도 [[모르핀]]과 [[아편]]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원래 그는 어릴 적부터 [[변비]]를 심하게 앓고 있었던 데다가 1차 대전 종전 후 생긴 내장병까지 겹쳐 병원을 자주 방문해야 했고, 소련의 기후 탓에 병은 더욱 악화되어 갔다. 1944년쯤 되면 바흐첼레프스키가 내장병으로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무장친위대 대원은 아무도 없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내장 출혈 증세도 보였다고. 진료 기록만 본다면 이 인간이 그런 악화된 상태에서도 대규모 학살을 잘 지휘하고 다녔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http://forum.axishistory.com/viewtopic.php?t=95695&start=15|출처]] [[http://forum.axishistory.com/viewtopic.php?f=38&t=95695&p=851267&hilit=bach+zelewski#p851267|출처 2]] * 신장은 182cm로 꽤나 큰 편이었다. [[나치 독일]] 인물 중에는 장신이던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특히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 회부되기 전 작성되는 억류 확인서(Detention Report)에서 키와 체중을 확인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빌헬름 카이텔]]은 [[http://museumofworldwarii.org/images/virtualtour/16g_KeitelID_lge.jpg|185cm]], [[칼 되니츠]]는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1/1c/DönitzDetentionReport.png|179cm]], [[헤르만 괴링]]은 [[http://3.bp.blogspot.com/-hfmoL2bIU1c/VQNZTrLb7UI/AAAAAAAAVPk/7uLSGVD0sHM/s1600/GöringDetentionReport.png|178cm]],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도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e/ef/RibbentropDetentionReport.png|178cm]]이었다. 억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프리드리히 파울루스]]의 키는 무려 [[http://www.heightcelebs.com/2015/03/friedrich-paulus/|193cm]]. * 중앙러시아 상급친위대 및 경찰지도자(Höherer SS- und Polizeiführer; HSSPF) 직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모스크바 경찰지도자로 내정되어있었으나 이는 [[모스크바 전투]]의 패배로 무산되었다. 친위대 및 경찰지도자는 주어진 관할 지역 내의 모든 SS부대에 대한 지휘권을 가졌으며 1944년 이후에는 이들에게 무장친위대 장군 계급을 수여하여 무장친위대의 지휘권도 일부 행사할 수 있었다. 그는 러시아 영토에서의 유일한 경찰지도자였으며 이는 종전까지 유지되었다. * 그런데 폴란드의 자랑인 음악가 [[프레데리크 쇼팽]]의 심장을 무사하게 만들었다는 게 세월이 지나 드러났다. 기회주의적인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쇼팽의 음악을 좋아해 그런지 몰라도 바르샤바 봉기 도중 쇼팽의 심장이 모셔진 성 십자가 성당 측에 개별적으로 방문해 심장을 지킬 테니 건네달라고 정중히 부탁했고 그렇게 가져간 쇼팽의 심장을 정말로 어떠한 손상도 남기지 않고 제대로 보관했다. 덕분에 이렇게 정중히 가져간 쇼팽의 심장은 무사히 지금도 남게 되었다. 출처는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46). 정확히는 보관되어 있던 쇼팽의 심장을 약탈한 후 바르샤바 시민들의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다시 반환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 쇼팽의 심장은 다시 성 십자가 성당에 안치되었다. [[http://m.mt.co.kr/renew/view.html?no=2014071708397514305|출처]] * 같은 전범이었던 [[에두아르트 슈트라우흐]]와는 사이가 굉장히 나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